이건 마치 어떤 압박으로 글을 쓰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술도 한 잔 찌끄렸고, 세상살이가 참 녹록지 않구나 하는 것도 깨닫고 있고,
한 자 뱉으면 소화가 좀 될듯 싶어 칼을 뽑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기준을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기에,
그건 정말 상대적인 것이기에...
사실 사는 얘기 꺼내기가 그 누구나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늘 지껄이는 말처럼,
인생에 여러 시련들을 겪고 있는 엉아들, 누이들......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한낱 꿈처럼 모든 것이,
스스로가 늘 원하던 평온함 속에서 깨어나길 바랄뿐 입니다.
모두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꿈에서 깨어나길 바랄뿐 입니다.
돌이켜보면,
주머니속에 늘 지니고 다니다가,
슬픔이 밀려 올 때 꺼내 보는 기억은,
마굿간 소풍에 2박3일이나 사람들과 어울렸던 기억,
마굿간 운동회때 미친듯이 뛰고 미친듯이 먹던 기억,
우짜집 전세내서 동이 트는줄도 모르게 들이켰던 기억,
온통 그런 것 뿐 입니다.
그 때만큼은 지금처럼 남편도 , 아빠도, 가장도, 그 무엇도 아닌
'나' 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는 추호도 아닙니다.
추억이 값진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며 지금은 또 다른 추억들이 쌓이고 있으니까요.
살다보니,
이십대를 상처로 시작해 이렇게 흘러왔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예전의 나에게 찾아가 한마디씩 충고해 주고 싶을 땐 너무나 많습니다.
예전에 어릴적에,
방학을 시골 할머니댁에서 보내곤 한 적이 있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포장 도로를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달려오고,
버스에 오르는데,
늘 할머니께선 촌스러운 빨간 꽃자수 지갑에서 꼬깃 꼬깃한 오천원짜리 하나씩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곤 하셨죠.
버스안에서
주머니속에 있는 꼬깃한 지폐를 어루만지며,
버스창 뒤로 멀어지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곤 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10년이 조금 지났네요.
큰 어려움이 들이닥쳐,
절망속에서 헤메일때,
어떤 누이가 힘내라며 지갑에서 10만원짜리 수표를 하나 찔러주더군요.
옛생각이 머리속을 스치며 고마움이란 표현보다는 가슴이 저려서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느덧
이곳에서도 강산이 변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정겨운 사람들 입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형태로 많은 도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감사한 마음만은 진심입니다.
사는 얘길 하려다 보니,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갑속의 두둑한 담배처럼 정말 소박하고 진실한 '고마움' 입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 막 머리속을 스쳐갑니다.
행복합니다.
즐겁습니다.
그러더니,
웃음이 지어 집니다.
늘~
행복하소서~
(뱀수형 ver.)
p,s
나이도 얼마 안 처먹은 놈이 주접 떨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그 주접에,
마굿간이 저에게 무엇인지 다 있답니다.
에피소드 하나
얼마전 TV에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가 나왔다.
'어머 왠일이야~' 하며 반가워하는 송바다언니한테,
" 당신이 Glenn Medeiros를 알어?" 그랬더니,
"야~ 쬬끄만게 까져서 그 노래를 알았어?"
쩝...ㅡ,.ㅡ
참고로 글렌은 17살에 데뷔한 정조형과 동갑인 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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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저는 문세형님이 5대강 사업을 하고, DDK주가조작 사건의 '몸통' 이셔도
충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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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삭]
경실누 이거?
* 사진은 몇일 후 삭제 ~
[현장 습격]
내 발연기에 비해, (쪽 팔려서 안올릴라켔는데...ㅡ,.ㅡ)
누난 프로급이군...음...
그리구 이것두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