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100人] 이문세, 80년대 감성과 문화의 중심
이문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발라드의 아이콘이다. 포크와 트로트가 주를 이루던 1980년대 세련된 팝과 한국적 감정을 잘 결합시켜 ‘한국형 발라드’의 지분을 다졌다. 이문세의 이름을 빼놓고는 1980년대 후반 가요사는 상당 부분 공란이 발생하게 된다. 그는 당시 청춘들의 코드와 감성을 제대로 읽었다. 이런 독해력은 ‘팝’ 중심의 음악을 ‘가요’로, ‘타이틀’ 중심의 음반을 ‘앨범 전체’로 중심축을 옮겨놓으며, ‘광화문연가’,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옛사랑’등을 국민가요 반열에 올린다. 이런 발라드의 큰 도약은 이후 변집섭, 신승훈, 조성모, 성시경 등을 거치며 하나의 계보로 남게 된다.
이문세 클래식처럼 단아하고 섬세한 멜로디
1986년에 발표된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발라드의 미래를 개척했다. 이 시기는 이문세가 당대의 제왕 조용필의 인기를 눌렀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클래식처럼 단아하고 섬세한 멜로디와 속 깊은 노랫말은 청소년과 여성들의 감성과 잘 통했다. 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는 가요를 팝에 비해 저급하다고 생각했던 편견마저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사실 그의 데뷔 앨범은 거의 알려지지 않아 한동안 대중들은 이문세를 ‘노래를 잘하는 MC’라고 생각했다. 그는 실제로 CBS 라디오에서 ‘세븐틴’이란 프로그램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방송가와 인연을 맺었고, 쇼프로그램 MC와 라디오 DJ로 얼굴을 알렸다. 두 장의 앨범이 실패한 뒤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의 소개로 작곡가 이영훈을 만났다. 이영훈과 콤비를 이뤄 발표한 3집은 이문세를 최고의 가수로 성장시키는 분수령이 된다. 이런 히트는 우연이나 단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4집 <사랑이 지나가면(1987년)>은 무려 28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광화문 연가’가 실린 5집 <가로수 그늘 아래서>도 가뿐하게 골든 디스크를 획득했다.
이문세 음악의 정체성과 발전에는 작곡가 이영훈의 공이 지대하지만 아마추어였던 그를 발견한 이문세의 눈썰미도 무시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대중성과 음악성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영훈의 비장한 미학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이문세는 유연한 연음방식 대신 절제와 끊어 부르기를 선택했다. 이는 이문세의 독특한 창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문세와 이영훈은 2001년까지 정규 앨범 8장(3,4,5,6,7,9,12,13집)과 기획 앨범 3장을 함께 작업을 했지만 이영훈은 2008년 2월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물론 이영훈 외에도 다양한 뮤지션과 협업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간(開墾)했다. 이적과 함께 불러 히트한 10집의 ‘조조할인’은 유희열이 작곡을 맡았고, 11집 ‘솔로예찬’은 조규만, 그리고 드라마 <발칙한 여자> OST로 사랑을 받은 ‘알 수없는 인생’은 작곡가 윤일상과 호흡을 맞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문세 수많은 리메이크 곡을 낳다.
이문세의 노래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리메이크를 낳았다. 빅뱅의 ‘붉은 노을’, 이수영의 ‘광화문 연가’는 원곡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조성모의 ‘깊은 밤을 날아서’, 임재범과 장재인은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도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로이킴이 ‘휘파람’을 불러 ‘이문세 노래 다시 부르기’의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이승철, 성시경, 서영은 등 걸출한 발라드 싱어들이 그의 노래를 불러 그가 발라드의 대부임을 다시 한 번 방증했다. 이에 대해서 이문세 본인은 “이영훈 멜로디의 승리”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발라드 팝’의 방점을 찍었던 그는 현재 공연 무대의 아이콘으로도 우뚝 섰다. 1998년 4월에 시작한 <이문세 독창회>는 10년 동안 300회의 공연을 통해 40만 명의 유료관객을 동원하며 열광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는 참신함과 감동의 무대를 위해 연출과 무대세팅, 음향, 게다가 춤이나 연기 같은 엔터테이너 적인 요소까지 치밀하게 기획했다. 그의 콘서트는 하나의 브랜드로 발전해 ‘라이브 콘서트’를 ‘종합예술’로 격상시키는데 공헌했다.
이문세 30년 내내 계속되는 그의 전성기
이문세의 시제는 현재진행형이다. 30년 내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안한 목소리와 유쾌한 위트로 친근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독자성을 잃거나 세월에 무디어지지 않는다. 이런 노련함과 건강함이야말로 그가 한국 대중음악사를 이끌며 달려온 힘찬 활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