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기사┃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귀 안에 쌓이듯…섬세한 미성, 이문세스런 감성

by 스테파노 스테파노 posted Apr 14, 2015 2015.04.14 14: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가수 이문세가 무려 13년만에 낸 정규앨범인 15집 ‘뉴 디렉션(New Direction)’이 음원차트를 휩쓸어 화제가 됐다. 연륜 있는 가수의 녹슬지 않는 기량을 확인하는 순간이지만, 2013년 조용필이 ‘헬로’를 내놨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문세의 디스코그라피(음반목록)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작곡가 이영훈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1, 2집이 각각 몇천장 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85년 이영훈을 만나 내놓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실린 3집은 무려 150만장이나 판매됐다.

이문세는 이영훈과 함께 보다 클래식 하고 서정적인 ‘이문세표 발라드‘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제 이영훈 없는 이문세의 음악은 어떻게 될까에 궁금증이 모아졌다. 물론 이영훈이 살아있을 때에도 조금 더 리드미컬하고 발랄해진 윤일상 작곡의 ‘알 수 없는 인생’과 유희열이 작곡한 ‘조조할인’을 이적과 함께 부르기도 했지만 거의 이영훈의 노래를 불러 최적화시켜놓은 상태였다.

‘돌아온 오빠‘ 이문세는 57세의 중년이지만, 힘 빼고 솔직한 감성을 노래해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발라드를 완성했다

또 하나는 이문세가 2007년과 2014년 두차례 갑상샘암 수술을 했다는 사실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가수로서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가까운 성대 부위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음반의 녹음은 컨디션이 최상일 때만 노래를 하는 ‘홈 레코딩‘ 방식을 썼다.

그런 상황임을 감안하고 ‘뉴 디렉션’을 들어보면 빨리 이해된다. 위의 두가지 상황만으로도 앨범 제목의 ‘새로운 방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방향’은 어쩌면 제 자신에게 하는 얘기다. 과거 영광을 내려놓고 새롭게 기대와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문세는 이번 음반에 수록된 9곡을 거의 힘을 빼고 부른다.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과 ‘붉은 노을’에서처럼 힘찬 가창 없이 가볍게 멜로디를 따라간다. 강현민이 작곡한 타이틀곡 ‘봄바람’의 후렴구 하이톤 부분은 아예 가성으로 부른다.

이문세는 “이번 음반에서는 창법이 바뀌었다. ‘옛사랑’에서는 시를읊조리듯이 툭툭 던지고, ‘그녀의 웃음소리뿐’에서는 샤우트 창법을 사용했지만 이번 음반에서는 섬세하게 편곡과 음악 흐름에 맞추려고 애썼다”고 전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쉽게 부르더라도 가사와 흐름에 충실하게 해 ‘감성쾌감’이 이뤄졌지만 대중에게 어떻게 관통할 것인가는 숙제라고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반응만으로도 대중과의 소통에는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수록된 9곡은 듣는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노래가 다르다고 한다. 타이틀곡 후보곡 4곡중에서 봄의 기운이 상큼하게 전달되는 ‘봄바람’이 선정된 이유는 지금이 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문세는 나얼이 피처링한 ‘봄바람’을 전자기타를 경쾌하게 치며 멜로디 위에 가볍게 올라탄다. 느낌은 강렬하지만 금세 싫증이 나는 타이틀곡이 많은것과 달리, ‘봄바람’은 들을 때마다 중독의 정도를 조금씩 늘려주는 타이틀곡이다.

기자는 딱 한 곡을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이문세의 신보가 다양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흥겨운 라틴 리듬에 실린 조규찬 작곡의 프러포즈송 ‘그대 내사람이죠’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의 슬픔을 담담하게 노래한 ‘사랑 그렇게 보내네’, 강력한 후크는 없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탈피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내용을 담아 시종 흥겨운 ‘Love Today’ 같은 노래들이 ‘귀’안에서 조금씩 쌓인다.

이번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은 이훈석은 “이문세는 노래 멜로디에 따라 가창력을 발휘하는 보컬리스트다. 자기만의 느낌 전달에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돌아온 오빠‘ 이문세는 57세의 중년이지만, 힘 빼고 솔직한 감성을 노래해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발라드를 완성했다

이문세는 지난 32년간 노래를 부르면서 영화를 누린 가수다. 80년대에는 젊은 남자들이 여자친구를 죄다 이문세에게 뺏겼다고 할 정도였다. 요즘 말로 하면 ‘감성깡패’였다. 하지만 그런 이문세에게도 ‘영원한 콤비’일 것 같았던 이영훈의 사망, 두 차례의 갑상샘암 수술이라는 ‘위기’가 닥쳤다. 이와 함께 아이돌 가수와 댄스, 일렉트로닉사운드, 힙합의 힘이 강해지면서 이문세의 섬세한 감성도 옛날 같지가 않았다. 이문세가 후배들의 리메이크 등으로 힘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한 이문세, 아니, 위기를 극복했다기 보다는 위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문세의 관조의 시선이 이번 음반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과거는 슬프고 처연하기도 하지만 청승맞지 않다. 그 현실에서 ‘찬란함 슬픔’을 만들어내고 소소하고 밝은 감성을 노래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이 느껴지는 이문세 발라드는 여전히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