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우리에게 이문세가 없었다면
남녀 불문 10대부터 80대까지 이문세 공연 손뼉 치며 좋아해
데뷔 땐 평범했던 가창력… 세월 거치며 '완벽 라이브'로
87년생도 즐긴 그 시절 히트송… 세대 아우르는 가수 또 있을까
여러 해 전 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남녀 여럿이 차를 몰고 강원도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어쩌다가 '이문세 노래 부르기' 게임을 하게 됐어. 좀 과장하면 춘천에서 강릉 갈 때까지 쉴 새 없이 이문세 노래를 합창했는데 그때 우리 모두 두 가지 사실에 놀랐어. 하나는 우리가 이문세 노래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니 하는 거였고, 두 번째는 우리가 그 모든 노래 가사를 다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었지."
지난 주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문세 공연을 보며 이문세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0대부터 80대까지 거의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관객들이 이문세의 무대를 보며 박수 치고 웃고 춤췄다. 클럽에서 전자음악에 맞춰 춤추듯 하는 20대와 좌우로 몸을 흔들며 박수를 치는 70대가 나란히 있어,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에겐 이미자도 있고 조용필도 있지만, 여전히 이문세도 있었다. 이 시대 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음악 담당기자로 비교적 오랫동안 여러 차례 공연을 본 입장에서는 이문세의 노래 실력이 나이 들수록 더 좋아져, 이제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는 점이 놀랍고 그 비결이 궁금했다. 고교 때 성악과 진학을 목표로 레슨을 받았던 이문세의 데뷔 초기 노래 실력은 말 그대로 '레슨받은 수준'이었다. 수축된 횡격막을 이완시키는 복식호흡법을 쓰지 않았고 코로만 숨을 쉬며 노래했다. 소리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정수리와 이마 사이에서 터져야 하는데 그의 고음(高音)은 목 근육 힘으로 끌어올려 입에서 나왔다. 이문세 히트곡 대다수를 작곡한 이영훈 역시 생전에 이문세의 표현력은 아낌없이 칭찬했으나 가창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0년 전쯤 이문세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을 때 '오페라의 유령'을 차용해 오프닝을 꾸몄었다. 그 주제곡을 성악 발성법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는 건 약간 안쓰러운 경험이었다. 오선지 맨 위의 선을 훌쩍 뛰어넘은 음(音)을 낼 때는 망치로 정 대가리를 꽝 때리듯이 불러야 한다. 그는 줄톱으로 철사 끊듯이 노래했었다. 물론 지금도 수많은 '노래 잘한다는' 대중 가수가 과도(果刀)로 천년수(千年樹)를 베겠다고 덤빈다. 특히 TV에서만 노래하는 가수들은 전부 그렇다.
/ 이철원 기자
지난 주말 본 이문세의 라이브는 거의 완벽했다. 그는 배 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올렸고 그 거대한 소리통에서 개미만 한 목소리도 냈다가 천둥 같은 소리도 터뜨렸다. 명주실처럼 가느다랗고 길게 이어지는 고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여덟 박자 넘게 끌고 갈 때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노래 잘하는 가수'에서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이문세의 가창력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좋아졌다. 특히 TV 출연을 삼가고 공연에 집중하면서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이문세는 이날 공연 중간에 "제 공연에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했다. 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자 그는 "지금 오셔서 다행이에요. 제 노래가 이제서야 원숙해졌거든요"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웃으며 박수 칠 때, 나는 진심을 담아 손뼉 쳤다. 가창력이 좋아야만 가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조동진이나 김현철이 그렇고 멀게는 밥 딜런 역시 가창력과는 거의 친분이 없는 뮤지션이다. 그러나 이문세처럼 디스코와 재즈, 포크까지 아우르려면 역시 가창력이 필요하다.
이문세는 공연 막바지에 노래를 소개하며 "1987년생 계시면 손들어 보세요" 했다. "지금 부를 곡이 1987년에 태어난 노래예요. 여러분과 나이가 같아요" 하더니 '사랑이 지나가면'을 불렀다. 300만장 가까이 팔린 이문세 최고작 4집에 실린 노래다. 클라이맥스 직전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에서도 그는 여리고 또 여리게 불렀다. 팔에서 소름이 돋아 온몸으로 빠르게 퍼졌다.
예전 인터뷰에서 이문세는 이렇게 말했었다. "제 인생에는 그렇게 늘 누군가가 나타났어요. 제가 열심히 노력하면 늘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사람이 나 타나서 도와줬어요." 공연을 보고 나니 그 말에 이렇게답해주고 싶었다. "우리에게도 늘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삶이 팍팍하고 버거울 때, 늘 어떤 사람이 기운을 돋우고 힘을 주곤 했지요." 만약 우리에게 이문세가 없었다면, 아마 사는 게 훨씬 재미없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이문세 노래를 흥얼거리는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와 토요일 밤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hw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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