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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2023.08.28 14:00 조회수 348
야만, 야만스러운 
                                  / 이명지


 다행이다. 그도 늙고 있어서….
나는 늙어가는데 당신은 팽팽하기만 한다면 그 배신감을 어쩔까? 세월이 느껴지는 꾸밈없는 그의 모습에서 안도감이 느껴지고 심지어 훈훈한 위로까지 받는 나의 유치한 마음에 피식 실소가 새어 나왔다.

 며칠 전 내가 사랑하는 가수 1호인 그를 TV에서 우연히 봤다.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지는 것 같은 반가움으로 TV 앞에 바짝 붙어 앉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느라 켠 TV의 한 프로그램에 그가 등장하고 있었다. 꾸안꾸,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모습과 면도하지 않은 얼굴에 수컷 냄새가 풀풀 살아있는 그의 캐릭터가 그대로였다. 그는 여전히 사내였다. 야성이 느껴지는 외모와는 달리 부드러운 음색으로 부르는 노래는 감성의 본질을 건드리는 발라드다. 감미로운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반전의 야성은 그 파장이 훨씬 셌다. 나이 든 남자가 저리 섹시할 수 있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그래 당신에게도 세월은 비켜 가지 않았구나. 참 멋지게 흘렀구나. 당신의 본질을 잘 지키며 멋지게 익어가고 있구나. 그래서 고마워, 참 고마워…. 한 때 나의 우상이 깨어지지 않은 것에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를 직접 본 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였다. 나는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할 뿐 사람에게 환호하는 건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연예인의 스캔들이 터져도 그건 그 사람의 행위인 거고 나는 그의 예술성만 본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주간신문 기자였던 내게 공연 관람권은 흔했다. 기회가 많다 보니 공연장에 가서도 끝까지 공연을 보고 온 적이 거의 없었다. 공연장의 함성과 현란한 조명이 라이브의 현장감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중간에 나와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공연을 완주했다. 그의 공연이었다. 사실 그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나의 일등은 아니었다. 그의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공연장을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도 초대장이 생겼고 공연장이 집과 가까웠던 이유가 더 컸다.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목이 터지라 함께 열창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발광에 가까웠던 그 생 날것의 기억들, 울고 웃었던 그 날 그 감동의 현장은 이문세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였다. 내 안의 야만이, 야만스러움이 단번에 끌려 나온 날이었다. 그 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활활 불 붙은 뜨거운 열기가 도무지 사그라들지 않아 내내 들끓고 있었다.

 지성의 반대말은 야만인가? 야만과 야성은 다른 듯 같다. 야성이 그 야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야만은 무지하고 교양 없는 것을 연상하지만 나의 야만은 그것과 다르다. 들판에서 함부로 자란 나무처럼 가공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처연히 비를 맞고, 바람과 동무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잎들을 흔들어 풀꽃들과 속삭이는 그 날것들의 자유로운 영혼, 그것이 나의 야만이다.

 나는 늘 지성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를 추구했다. 그렇게 보이려 노력했고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을 다 속여도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내 안에 숨겨진 나의 똘끼, 어느 순간 나는 폭발한다는 사실을.

 나의 끼는 야만에 가깝다. 안주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그것이 건드려지는 포인트는 리듬이다. 나의 감성에 접선하는 음악을 만나면 열광하게 된다.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나의 이성이, 무의식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통제의 빗장을 완강히 무찌르고 폭발하는 발화점, 그것은 주로 음악이다. 이문세의 노래들이 그랬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정동길 그 조그만 교회를 본 적이 없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걸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지나온 나의 추억이 마치 거기에 있는 듯 저릿해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우리 모두 세월 따라 흘러와 여기서 당신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의 노래가 나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고 따뜻하게 토닥거렸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애써 외면하며 앙다물고 살았던 지난날의 내 상처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그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세월의 힘, 그 강을 당신도 건너왔구나. 그렇게 우리는 함께 육십 대가 되었구나.

"어두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그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의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그가 있어, 그와 함께한 추억이 있어 나는 정말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이다.
(수필가)
  • profile
    파란하늘 2023.08.28 14:30
    좋은 추억 계속 만드시길 바래요
    표현이 시적이시네요
    가입하신 오늘 님의 용기가
    역사적이시네요 ^^
    힘내시구 많은 음악과 마굿간의 즐거움
    누리시길 바래요
  • ?
    리사리사 2023.08.28 15:31
    고맙습니다 파란하늘님,
    오늘은 가을 냄새가 나네요!
  • profile
    내오랜... 2023.08.28 15:51
    글 공감하며 잘읽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아 검색해보니 네임벨류가 있는 작가분이셨네요^^

    2013년 6월 잠실주경기장 5만공연의 개인적 평가는 냉정하게 공연 완성도는 기대에 살짝 못미쳤지만(욕먹으려나?ㅎ) 다른 그무언가가 나머지를 채우기에 충분 아니 넘치도록 아주 굉장했던! 두번 다시없을 공연이 아니었나 싶은 무대였답니다~
    http://www.leemoonsae.com/fanmoon/library_family/145084

    자주자주 오셔서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
    리사리사 2023.08.31 07:01
    우왓 검색까지!
    감사합니다~^^
    문세님과의 추억을 공감하는 사람끼리 나누고 싶어서 올렸어요.
    역시 함께하니 더 기쁘네요!
  • profile
    오빠바라기 2023.08.29 10:56
    우와~긴 글이지만 숨도 안쉬고 읽었어요.
    오빠의 공연은 다시 가슴뛰게 만드는 마법이 있어요~^^
    행복한 글 감사합니다~
  • ?
    리사리사 2023.08.31 07:02
    네 그때 생각하면 저도 아직 가슴이 뛰어요. 문세바라기들~♡
  • profile
    가을내음 2023.08.29 11:41
    나이 든 남자가 저리 섹시할 수 있다니… 공감에 한표 드립니다.날마다 설레이며 콘서트를 기다리고있습니다
  • ?
    리사리사 2023.08.31 07:03
    그쵸? ㅎㅎㅎ
    나이든 섹시한 남자는 찐이죠. 문세님처럼~^^
  • profile
    묵호등대지기 2023.08.29 20:02
    와 ~긴??글 지루하지않게 자~알 공감하고갑니다
    기자분.작가분들은 역시 글솜씨가 다르신가봅니다 ㅎㅎ
  • ?
    리사리사 2023.08.31 07:04
    아궁 감사합니다!
    어깨가 으쓱해지네요 ㅎㅎ
  • ?
    술통 2023.08.30 23:06
    그러게요 기자분이라 긴글도 막힘없이..쫘~~악.. ㅋㅋㅋ
    세월을 막을수 만 있다면 이한몸 희생하여 던지고 싶네요..ㅠㅠㅠ
    지금은 쭈굴한 내얼굴과 늘어진 뱃살을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네요
    하지만 마음은 이팔 청춘입니다. 아~~짜~~
    9월 공연에 다시금 가슴벅참을 느껴 보자구요~~~
  • ?
    리사리사 2023.08.31 07:06
    세월은 우리를 숙성시켜 주잖아요. 더 향기롭게~♡
    더 멋지게 즐겨봐요 우리~
  • profile
    remi 2023.08.31 11:19
    챔기름 두른듯 고소하게 매끄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꺼진줄 알았던 불씨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바로 가입, 입덕했습니다 ㅎㅎ
    예상보다 우리가 오래 살거 같으니ㅎㅎ 앞으로 더 건강하게 즐겨보아요~
  • ?
    리사리사 2023.10.02 05:26
    ㅎㅎ
    오래오래 즐겁게 지내봐요~♡
  • ?
    광양댁 2023.08.31 19:46
    크~~~~
    마치
    한잔의 쌩맥주같은 글^^
    씨원하게 읽고 갑니다♡
  • ?
    리사리사 2023.10.02 05:26
    고맙습니다!
    급 생맥 당기네요~^^
  • ?
    허브향기 2023.08.31 20:57
    80년대 한시대의 명곡이지요
    LP도 많이듣고 지금도 마음은
    소녀처럼 콘서트 가면 박수치며폴짝폴짝
    뛰고싶네요 글 끝부분인가요 애써외면하며
    살아왔던 살아왔던 나의삶 . 치유 가만히 쓰다듬으며
    나의 10살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 멏년있으면 나도60대가 되겠지 하는 생각에
    한없이 울고싶고 무너지는느낌......또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 ?
    리사리사 2023.10.02 05:27
    맞아요. 문세님의 노래는 제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어요.
    이걸 우리는 위로라고 하지요^^~
  • profile
    황소뿔 2023.09.02 10:59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기에 작가님 아니면 평론을 주로 하시는 칼럼리스트 또는 기자님인줄 알았는데...역시나 작가님이셨네요...^^
    남자인 저도 섹쉬한 그 분의 자태에 황홀감에 취해 버리는게 한두번이 아닌데,
    하물며 학창시절...소녀의 감성을 그대로 갖고 계신 여성분들이라면 까무러치지 않은게 다행이지 싶네요.
    세월이 흘러 잠재 되어있는 내 내면의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 분의 감수성과 흔들림없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사님의 시적인 표현이 아마도 울컥 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아니었나 생각 해 봅니다.
    부디 오늘도 내일도 험난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희망의 메시지가 매일매일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 ?
    리사리사 2023.10.02 05:31
    병훈님 고맙습니다!
    문세님의 노래는 가사가 모두 한 편의 시고 위로고 감성 추억이 돼요. 가슴 속의 무언가를 툭툭 건드리는...
    그래서 세월이 가도 노래 감성이 닳지 않는가봅니다
  • profile
    아모리스 2023.09.15 14:58
    어느날 티비속에 머플러를 고급스럽게 두른 멋지고 섹쉬한 남자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가슴을 뭉클하게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한 15년에서 20년전 쯤 !! 지금은 15살 먹은 내 딸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너튜브로 그 남자(이문세님)의 영상으로 음악을 듣고 학교갔다오자마자 이문세님의 음악을 또 듣고 또 듣고 합니다. 우리새대의 히어로로 별밤지기부터 지금까지 그 남자의 매력은 우리의 맘을 생각하게 하는 매력의 깊이가 무한대인듯 합니다. 정말 건강하게 행복하게 영영 ~~~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무르길 바라며 . 다음 콘서트엔 꼭 딸아이와 참여할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마굿간님들은 다 멋진분들인거 같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입니다.
  • ?
    리사리사 2023.10.02 05:33
    무언가에 빠질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인거 같아요.
    딸아이도 수경님의 감성을 쏙 빼닮았나보네요 ㅎ
    아름다운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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