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입니다.
참 푸릅니다.
지난 4월은 푸르름의 시작이었지만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렸기 때문이었는지
푸르름도 애잔했습니다.
벚꽃 길을 달려 어머님의 몸을
대지의 품에 안장할 때
꽃바람, 봄바람은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 같았습니다.
15년 전 아버님을 보내드릴 땐,
마음이 많이 슬펐는데
이번에 어머님을 보내드릴 땐,
슬프고도 많이 죄송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몸을 볼 때
어머니의 몸이 자식들의 종의 몸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 몸을 깨뜨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했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그리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이 내 기억 속에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자식은
어머니 앞에 죄인입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문세의 노래 중,
‘사랑, 그렇게 보내네.’가 떠올랐습니다.
들을수록 애잔한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눈물샘을 터트린 노래는
‘사랑은 늘 도망가’였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우연히 들었습니다.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시작부터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메인 가사는 내 마음을 울게 했습니다.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어머님은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두 번씩(양쪽 모두)
부러지시는 과정에서
입원과 수술, 퇴원을 반복하시는
4년여의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병원이나 집에 문병을 가면
어머님은 늘 바쁜데 뭐 하러 왔냐고
어서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철없는 자식은 그 말을 곧이듣고
늘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떠날 때면
어머님은 언제나 아쉬움을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난 병문안 가도 바쁘다는 핑계로
늘 도망치듯 나왔고
어머님은 손사래 치듯 가라고 하시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날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이 정작 당신이
도망치듯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사랑은 늘 도망가’는
내겐 그렇게 슬픈 노래였습니다.
5월입니다.
푸른 오월입니다.
천국에서 늘 푸른 삶을 사실
어머님, 어버님처럼
나는 여기서 늘 푸른 삶을 살 것을
하늘을 우러르며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