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문화부장‘나, 내년이면 100세가 돼/더부살이, 전쟁,
결혼, 출산, 가난한
생활/괴롭힘을 당하고
고민하고 괴로운 일, 슬픈 일도 많았지만/하늘은 꿈을 소중히 키우게 했고/꽃은 마음에 부드러움을 품게 했고/
바람의 속삭임은 몇번이나 나를 격려해줬어/중략/ 100세의 결승전을
가슴 활짝 펴고 지날거야’
새해 벽두에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쓴 시 ‘100세’를 읽었다. 1911년에 태어난 이 할머니는 2010년에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라는
내용의 첫 시집 ‘약해지지마’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녀의 시는 일상을 담담하게 녹여낼 뿐이지만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시 한 편이 절망과 불안 속에 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새해에 그녀의 시를 읽는 것은 희망을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일이 될 것 같다.
가수 이문세의
노래에도 시정(詩情)이 흐른다. 나는 2012년 마지막 밤을 이문세 콘서트와 함께 보냈다. 지난 2011년 4월 시작한 ‘붉은 노을’ 이란 타이틀
공연의 피날레였고 꼭 100회째 콘서트였다. 그는 100회의 공연으로 15만 명을 모으는 대기록을 세웠다. TV 출연이 잦은 것도 아니고, 신곡을 낸
가수도 아닌데 이 같은
기록을 세운 것이 놀랍다. 물론 그 배경에 대중가요를 외면하던 고학력 여성들조차 클래식적 요소를 갖춘 ‘이문세표 팝 발라드’에 열광했던 1980년대 중반의 전성시대가 존재한다. 명불허전의 공연답게 ‘광화문 연가’‘옛사랑’‘붉은 노을’‘가을이 오면’ 등 히트곡으로 3시간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발레와 노래시의 융합’을 시도한 짜임새 있는 무대, 현악주자들이 가수 주위를 도는 턴테이블 무대 등이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싱싱하고 푸릇푸릇했다. 이문세 공연이 늙지 않는 이유다.
2011년 말에도 이문세 공연을 봤었다. 이문세는 그해 콘서트에서 한해동안 고생한 관객들이 그들 자신을 향해 ‘나 잘했어’라고 칭찬하자고 했다. 관객 모두가 함성을 지르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며 전 관객에게 ‘문세 영양혼식쌀’ 350g씩을 선물하기도 했다.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2012년 공연 말미에 그는 자신을 위해 관객들이 ‘이별이야기’라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가만히 듣고나서 객석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가수로부터 박수를 받는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묘한 자부심을 안겨줬다.
이문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100회 공연 내내 지치지 않은 체력으로 뛰고 춤추면서 동시에 노래했다. 이 같은 공연을 위해 술을 자제하면서 등산과 운동으로 자기
건강을
관리했다. 자신이 흘린 땀으로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명품 콘서트’의 기본조건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한 셈이다. 이문세 공연의 성공 방정식은 ‘철저한 준비 + 관객존중주의 + 스태프들과의 완벽한 호흡 + 땀 = 전 공연 매진 레전드(legend)’다.
이문세는 올해로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이문세가 수만 명이 모이는 큰 공연장에서 노래하면서 발라드 공연의 기네스 기록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를 쓰는 100세 할머니와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무대 위를 질주하는 50대 가수. 시바타 할머니와 이문세가 레전드를 만들고 있는 데는 열정, 아름다운 시정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애정도 한몫한다. 그들이 일상에서 오는 소박한 즐거움을 시로 옮기거나, 에너지 넘치는 콘서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안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우리에게 전해져온다. 남을 향한 열정이 종국에는 자기도 위안한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jinye@munhwa.com
진심으로 당신을 존경합니다...'레전드 이문세'